나주(금성)오씨 전자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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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나주의 연혁

나주羅州는 전라남도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

발라군發羅郡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ㆍ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 등이 위치했던 곳이다.

신라

660년(무열왕 7년)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뒤 이 지역에 대방주帶方州가 설치되었다.

이어 686년(신문왕 6년)에 발라군을 통의군通義郡으로 고쳤으며, 757년(경덕왕 16년)에는 통의군을 다시 금산군錦山郡으로, 반나부리현을 반남현潘南縣으로, 미동부리현을 현웅현玄雄縣으로 각각 개칭했다.

견훤甄萱은 892년(진성여왕 6년) 이 지방을 중심으로 후백제를 세웠다. 895년 왕건, 궁예에게 투항하여 철원군 태수가 되었다. 궁예, 903년 왕건을 정기태감精騎太監으로 삼고, 주사舟師(=水軍)를 보내어 금성錦城 등 10여 성城을 공취하고, 금성錦城을 나주羅州라고 개명하였다.

고려

918년 왕건, 고려의 왕으로 추대되어 즉위하였다. 983년(성종 2년) 고려는 처음으로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하였으며, 나주에는 나주목羅州牧이 설치되어 5개 군郡과 11개 현縣을 다스렸으며, 외관직外官職이 파견되었다.

995년(성종 14년)에 절도사節度使를 두고 진해군鎭海軍이라 하여 해양도海陽道에 예속시켰다.

1005년(목종 8년) 외관에 12절도ㆍ4도호ㆍ동서북계 방어진사防禦鎭使ㆍ현령ㆍ진장鎭將만을 두었다.

1010년(현종 1년)에는 거란契丹의 난을 피하여 왕(현종)이 이곳에서 10여 일을 머무르며 지금의 심향사(금성산 기슭)에서 연등회와 팔관회를 개최하였으며, 거란군이 물러감에 왕은 환도하였다.

1018년(현종 9년) 안무사安撫使를 폐하고, 4도호都護ㆍ8목牧ㆍ56지주군사知州郡事ㆍ28진장鎭將ㆍ20현령縣令을 두었다. 이에 따라 나주는 다시 나주목羅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조선 세조 때에는 나주에 진鎭을 두어 관할하였는데, 관할에는 2군郡(영암군ㆍ영광군) 8현縣(함평ㆍ고창ㆍ광산ㆍ장성ㆍ진원ㆍ무장ㆍ남평ㆍ무안) 등이 있었다.

1645년(인조 23년)에 향리가 목사 이갱생李更生을 구타한 강상죄로 인해 금성현錦城縣으로 강등되었으나, 1654년(효종 5년)에 다시 나주목羅州牧으로 복구되었으며,

1655년(효종 6년)에 나주에서 전패殿牌를 파손한 변이 있어 그 읍호를 낮추어 금성현錦城縣으로 하였다. 1664년(현종 5년)에 금성현錦城縣을 나주목羅州牧으로 승격시켰다.

1728년(영조 4년)에도 비슷한 이유로 해서 금성현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737년(영조 13년)에 재차 나주목羅州牧으로 복구되었다. 그 후 목牧으로서 지속되었다.

1894년(고종 31년) 갑오경장甲午更張 때 전국을 23부府로 구획하고 나주부羅州府로 되어 관찰사가 주재하였다.

1895년(고종 32년) 행정 구획이 다시 개편됨에 따라 부府가 폐지되고, 나주군羅州郡으로 전라남도에 속하고 행정 중심은 광주로 옮겨 갔다.

부府ㆍ목牧ㆍ군郡ㆍ현縣 등을 모두 군郡으로 고쳐 331군郡을 두었다. 각 부府에는 관찰사, 그 밑의 수령으로는 군수郡守만을 두었다.

대한제국 1897.10.12 ~ 1910.08.29

1896.8.6 [칙령 제36호]로 다시 23부府에서 13도道제로 개편되었다. 전국은 한성부漢城府를 제외하고 모두 13도道로 나누었고, 도道는 다시 7부府 1목牧 331군郡으로 개편되어 각 도에 관찰사를 두고, 그 아래에 부윤府尹ㆍ목사牧使ㆍ군수郡守 등의 지방관을 배치하여,

1910년 한일합방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와 같은 지방제도 개혁으로, 나주군羅州郡은 전라남도에 속하는 1개 군郡이 되었다.

1906년 지방 구역 정리에 따라, 나주군의 종남ㆍ비음ㆍ원정ㆍ금마면이 영암군에, 망운ㆍ삼향면이 무안군에, 대화ㆍ장본ㆍ오산ㆍ여황ㆍ적량면이 함평군에 편입됨으로써 나주군의 영역이 대폭 축소되었다.

조선(일제강점기/일제시대) 1910.08.29 ~ 1945.08.15

1914년 군면郡面 통폐합으로, 남평군南平郡이 폐군되어 편입되었고, 남평ㆍ산포ㆍ금천ㆍ봉황ㆍ다도면이 편입되었다. 또한 함평에 편입시켰던 적량ㆍ장본ㆍ여황면을 환속還屬시켜서 본량면으로 합했다.

1927년 영산면이 영산포읍으로 승격하였다.

1929년 나주면과 나신면이 합하여 나주면羅州面이 되었다가,

1931년 나주읍羅州邑으로 승격했다.

대한민국

1948년 정부수립 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주오씨 최대 집성촌이 있는 나주군羅州郡 삼도면, 본량면, 평동면 등이 광산군光山郡으로 편입되었고, 그 후 광산군이 광주광역시 광산구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