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족보
  • 나주오씨족보 소개
  • 나주오씨 족보 서문

신사보 서문

옛날 장구령張九齡(당나라 재상)은 장열張說(당나라 재상)과 서로 친밀하고 소중하게 여겨 마침내 같은 족보에 들었으나, 성남城南의 두씨杜氏는 두정륜杜正倫(당나라 중서시랑)과 족보를 함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성이 같다고 하여 같은 족보에 함께 오르는 데에는 예로부터 나름의 원칙이 있었으며, 족보를 합치느냐 합치지 않느냐 하는 것 또한 서로 간의 정의情誼가 두터운가, 그렇지 못한가와 관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먼저 일족 간의 정의를 돈독히 한 뒤에야 함께 족보를 편찬할 수 있다. 이와 반대라면 차라리 족보를 합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대체로 성姓이라는 것은 조상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하나로 통괄하는 것이므로 백 세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반면 족族이라는 것은 자손들이 어디에서 갈라져 나왔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므로 여러 세대를 지나면서 달라지게 된다.

이처럼 변하는 것에서 거슬러 올라가 변하지 않는 근본에 이르는 것은, 마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그 근원을 알고, 나뭇잎을 더듬어 그 뿌리를 찾아가는 것과 같다.

나무(木)는 본래 뿌리가 하나이지만 중간에서 가지가 갈라지므로 자연히 무성한 가지도 있고 시든 가지도 있다. 물(水) 역시 본래 근원이 하나이지만 중간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므로 맑은 물도 있고 흐린 물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무성함을 자랑하면서 시든 가지를 두고 같은 나무가 아니라고 할 수 없으며, 맑음을 자랑하면서 흐린 물을 두고 같은 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모두가 같은 뿌리에서 나고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것이니, 맑음 가운데 흐림이 있고 무성함 가운데 쇠함도 있는 법이다. 또한 흐림이 없다면 맑음을 온전히 알 수 없고, 쇠함이 없다면 무성함도 온전히 알 수 없다.

자손이 번성하기도 하고 쇠미해지기도 하는 것 역시 이와 같다.

그렇다면 오늘 쇠미한 자손이 훗날 번성하지 않으리라고 어찌 알겠으며, 오늘 번성한 자손이 훗날 쇠미해지지 않으리라고 어찌 알겠는가?

번성하고 쇠퇴하는 것은 조물주에게 맡겨진 일이다. 우리가 오직 생각해야 할 것은 조상께서 모든 자손을 한결같이 보시는 뜻을 받들어, 백대가 지나도록 일족 간의 정의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서로를 길 가는 남처럼 여기게 되는 일을 거의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족보가 없음을 걱정할 일이 있겠는가?

한나라 말엽에는 족보와 계보의 전승이 많이 없어져 자손들이 자기 조상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바로 이것을 걱정하였으므로 족보를 편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의 족보는 맑고 흐림이나 번성하고 쇠미함을 따지지 않고 크게 하나로 일족을 합하여, 그 뿌리와 근원이 하나임을 중히 여긴다.

그러므로 비록 한두 파 사이에 서로 어긋나고 맞지 않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앞서 장씨와 두씨가 정의에 따라 족보를 합치기도 하고 합치지 않기도 했던 것처럼 처리하면 될 뿐이니, 그것이 족보 자체에 무슨 손상이 되겠는가?

훗날 붓을 잡아 기록하는 사람이 사서와 전기를 참고하여 씨족지氏族志를 편찬할 때 그 근본으로 삼을 자료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대대로 이어온 덕망의 빛남, 학문의 깊고 넓음, 명예와 절의의 뛰어남, 학문과 가문의 연원이 바르고 큼에 대해서는 옛 족보의 서문에서 이미 많이 서술하였으므로 다시 장황하게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이 정도로 간략히 적어 서문으로 삼는다.

1941년(신사辛巳) 2월 상순에 석문공石門公 후손 필선弼善이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