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만포공 대경 소록 (12世 대경 大經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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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포공 대경 소록 晩圃公大經所錄
[註] <만포공 대경 소록>은 나주오씨 최초 족보(1747년 발행 정묘보)에 실린 내용으로, 12世 대경大經(1689-1761, 명곡공 증손) 선조께서《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에서 발췌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번역문]
장화왕후 오씨莊和王后吳氏가 일찍이 꿈을 꾸는데, 바다의 용이 품 안으로 들어왔다. 놀라 깨어 부모에게 이야기하니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얼마 안 되어 태조가 수군 장군으로 나주羅州에 와 진수鎭守할 때, 목포木浦에 배를 정박시키고, 물 위를 바라보니 오색의 구름이 서려 있어서 태조가 그리로 가보니 장화왕후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태조가 그녀를 불러 가까이하였는데, 미천한 신분이라고 임신을 시키지 않으려고 (정액을) 자리에 쏟았더니 왕후가 곧 빨아들여 마침내 임신하게 되었고, 아들을 낳으니 이가 바로 혜종惠宗이다. 얼굴에 자리 무늬가 있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주름살 임금(접주襵主)'이라 불렀다. 항상 물로 잠자리를 씻어내고 또 큰 병에 물을 담아 두었다가 팔을 씻었는데 싫어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용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려 왕조에서 오규吳珪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덕을 숨긴 채 평생을 마쳤다고 한다. 오규는 아마도 오숙규吳淑珪인 듯하다.
고려 태조비 장화왕후 오씨의 조부는 부돈富伅이고 아버지는 다련군多憐君인데, 대대로 나주의 목포에서 살았다. 다련군은 사간沙干 연위連位의 딸 덕교德交를 아내로 맞아 장화왕후를 낳았다.
앙암仰巖 동쪽 용이 날던 땅이요,
바로 거기가 어진 왕비의 옛 집터로다.
구세九世의 장군將軍이 묵던 곳이요,
삼한三韓의 태자가 태어난 집이라네.
성조聖祖(고려 태조)께서 개척하신 지금의 고을이요,
영비靈妃(장화왕후)가 나고 자란 옛 고을이네.
(오른쪽(위) 2수는 김극기의 시이다)
용손龍孫(고려 태조)이 그날 군함을 대고서,
갑자기 아침엔 구름이 되고 저녁엔 비가 되는 선녀를 만났도다.
천 년 전 박희薄姬(한나라 고조의 후궁,‘장화왕후’를 빗대어 말함) 계집이 진실로 좋은 짝을 만나니,
지나가는 사람도 그곳을 완사천浣紗泉이라 하는구나.
비단을 빨던 강가가 태조의 처가의 고향이요,
흥룡사興龍寺 안에는 그 서광이 어리었도다.
지금까지도 늙은이들이 남겨진 덕을 그리워하며,
피리 불고 북 치면서 추대왕皺大王(혜종)을 기쁘게 하네.
(오른쪽(위) 2수는 김종직의 시이다)
금성산錦城山은 바다 남쪽에 있으니,
태사太姒(주나라 문왕의 비, 무왕의 어머니로, ‘장화왕후’를 빗대어 말함)의 고장으로 오백년을 이어왔네.
(오른쪽(위)은 윤소종의 시이다)
오른쪽(위)의 여러 내용들은 《고려사(麗史)》와 《동국여지승람(輿覽)》에서 발췌한 것이며, 지금의 이산 현감尼山倅 대경大經이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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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표점)]
莊和王后吳氏, 嘗夢浦龍來入腹中。 驚覺以語父母, 共奇之。 未幾, 太祖出鎭羅州, 泊舟木浦。 望見川上有五色雲氣. 至則后浣布。 太祖召幸之. 以側微不欲有娠, 宣于寢席。 后即吸之, 遂有娠, 生子, 是爲惠宗。 面有席紋, 世謂之襵主。 常以水灌寢席, 又以大甁貯水洗臂, 不厭眞龍子也。
高麗朝以吳珪除職, 辭謝隱德, 終身云。 吳珪疑即吳淑珪也。
高麗太祖莊和王后吳氏, 祖富伅, 父多憐君, 世家羅州之木浦. 多憐君娶沙干連位女德交, 生后。
仰巖東畔龍飛地, 正是賢妃舊所居。 九世將軍經宿處, 三韓太子誕生閭。
聖祖開拓今郡國, 靈妃生長舊家鄕 。
(右二首金克己詩)
龍孫當日艤戈船, 忽夢朝雲暮雨仙。 千載薄姬眞合轍, 行人指點浣紗泉。
濯錦江邊舅氏鄕, 興龍寺裏藹祥光。 至今父老懷遺德, 簫鼓歡娛皺大王。
(右二首金宗直詩)
錦城山在海南邊, 太姒家邦五百年。
(右尹紹宗詩)
右諸條出麗史及輿覽, 而今尼山倅大經所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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