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내한공 희도 소록 (9世 희도 希道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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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공 희도 소록 內翰公希道所錄
[註] <내한공 희도 소록>은 나주오씨 최초 족보(1747년 발행 정묘보)에 실린 내용으로, 9世 희도希道(명곡공, 1583-1623) 선조께서는 <동국여지승람>을 참고하여, 오씨가 고려 태조의 왕후가 되어 혜종왕을 낳은 때부터 오씨가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음을 기록하였다.
[번역문]
오씨吳氏는 본래 나주羅州 흥룡동興龍洞 사람이다. 오씨가 고려 태조의 왕후가 되어 혜종왕惠宗王을 낳은 때로부터 오씨가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로 문신과 무신이 서로 이어 나왔고, 혹은 부마駙馬(왕의 사위)로 선발되어 들어가 영화롭고 현달함이 매우 남달랐다. (이 사적은 『동국여지승람』에 보인다.)
오씨 족보는 종조부從祖父이신 금양군錦陽君(오겸吳謙)께서 남평 현감으로 계실 때, 같은 종친인 습독習讀(관직) 명복命福이 베껴 쓰기 위해 빌려 갔다가 집에 화재가 나서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 후 진사進士이신 종조부從祖父(오인吳訒)께서 남은 문헌들을 거두어 모아 대략 족보를 만드셨으나, 정유재란(선조 30년, 1597년)으로 인해 또한 보존하지 못하였다.
700년을 이어오던 족계族系를 끝내 고증할 길이 없으니, 자손들의 애통한 마음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이에 삼가 근대 조상들의 휘(이름)를 기록하여, 훗날 후손들이 살펴볼 수 있도록 남긴다.
오른쪽(이상)은 내한공內翰公 희도希道(1583-1623)가 기록한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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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표점)]
吳氏本羅州興龍洞人也。自吳氏爲高麗太祖王后生惠宗王,吳氏始顯于世。
厥後文武相繼,或選入駙馬,榮顯殊異(事見輿覽)。
吳氏族譜,錦陽君祖父(謙)爲南平倅時,同宗習讀命福,以傳寫借去,失火見失。
其後進士祖父(訒)掇拾遺籍,粗成族譜,而丁酉兵火又不得保。
七百年相傳族系,卒無所徵。子孫之疚心,其可已乎!
謹錄近代祖先之諱,以備他日後昆之見。
右,內翰公希道所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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