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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고려사 권88 열전 권제1 후비 서문, 장화왕후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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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권88 열전 권제1 후비 서문, 장화왕후오씨

 

후비 서문

 

[번역문]

 

후비1(后妃一)

고려(高麗)의 제도는 왕의 어머니를 왕태후(王太后)라 부르고, 적처(嫡妻)를 왕후(王后)라 부르며, 첩을 부인(夫人)이라 불렀으니, 귀비(貴妃)ㆍ숙비(淑妃)ㆍ덕비(德妃)ㆍ현비(賢妃)가 바로 부인으로 품계는 모두 정1품이다. 그 나머지 상궁(尙宮)ㆍ상침(尙寢)ㆍ상식(尙食)ㆍ상침(尙針)도 모두 정원(定員)과 순서[次]가 있었다. 정종(靖宗) 이후로는 혹은 궁주(宮主)라 부르고, 혹 원주(院主)라고도 부르며, 혹 옹주(翁主)라 부르기도 하여, 고쳤다가 되돌리는 것이 일정하지 않아 자세하게는 알 수 없다. 태조(太祖)께서는 옛것을 본받아 풍속을 교화하려는[化俗] 뜻이 있었지만, 그러나 토습(土習)에 익숙하여 아들을 자기 딸에게 장가보내면서 휘(諱)하여 〈딸은〉 그 외가의 성(姓)으로 칭하였다. 그 자손들도 가법(家法)으로 삼아서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으니, 안타깝도다! 대개 부부(夫婦)는 인륜(人倫)의 근본으로 나라가 다스려지거나 어지러워지는 것이 모두 이로부터 비롯되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후비전(后妃傳)을 짓고 빈(嬪)ㆍ장(嬙)ㆍ부인들도 아울러 각각 그 다음에 붙인다.

 

 

[원문]

 

后妃一

高麗之制, 王母稱王太后, 嫡稱王后, 妾稱夫人, 貴妃·淑妃·德妃·賢妃, 是爲夫人, 秩並正一品. 自餘尙宮·尙寢·尙食·尙針, 皆有員次. 靖宗以後, 或稱宮主, 或稱院主, 或稱翁主, 改復不常, 未可詳也. 太祖法古, 有志化俗, 然狃於土習, 以子聘女, 諱稱外姓. 其子孫視爲家法而不之怪, 惜哉! 盖夫婦人倫之本也. 國家理亂, 罔不由之, 可不愼歟? 故作后妃傳, 而嬪嬙夫人, 幷各附于其次.

 

 

태조 후비 장화왕후 오씨

 

[번역문]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는 나주(羅州) 사람이다. 조부는 오부돈(吳富伅), 아버지는 오다련군(吳多憐君)으로, 대대로 나주의 목포(木浦)에 살아왔다. 오다련군은 사간(沙干) 연위(連位)의 딸 덕교(德交)에게 장가들어 왕후를 낳았다. 왕후가 일찍이 나루터의 용(龍)이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놀라면서 깨어 부모(父母)에게 말하니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오래지 않아 태조(太祖)가 수군장군(水軍將軍)으로 나주에 출진(出鎭)하여 목포에 정박하였다. 〈태조가〉 강가를 바라보았더니 오색(五色)의 구름 같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 곳에〉 이르니 왕후가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태조가 불러 사랑하였다. 〈왕후의 집안이〉 측미(側微)하므로 임신시키지 않고자 하여 잠자리에 깐 돗자리에 〈정액(精液)을〉 뿌렸으나, 왕후가 바로 이를 〈자신의 질 안에〉 넣어 결국 임신하고 아들을 낳으니 이가 바로 혜종(惠宗)이다. 〈혜종은〉 얼굴에 돗자리 무늬가 있었으므로 세상에서 이르기를 ‘주름살 임금[襵主]’이라 하였다. 늘 물을 잠자리에 부어 두었으며 또 큰 병에 물을 담아두고 팔 씻기를 싫어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용의 아들이었다. 나이 7세에 태조가 〈혜종이〉 왕위를 이을만한 덕이 있음을 알았으나, 그 어머니가 미천해 왕위를 물려받지 못할까 걱정하여 짐짓 옷상자[笥]에 자황포(柘黃袍)를 담아 왕후에게 하사하였다. 왕후가 〈그것을〉 대광(大匡) 박술희(朴述熙)에게 보였고, 박술희가 태조의 뜻을 미루어 그를 세워 정윤(正胤)으로 하자고 요청하였다. 왕후가 훙서하자, 시호(諡號)를 장화왕후라 하였다.

 

 

[원문]

 

莊和王后吳氏, 羅州人, 祖富伅, 父多憐君, 世家州之木浦. 多憐君娶沙干連位女德交, 生后. 后嘗夢浦龍來入腹中, 驚覺以語父母, 共奇之. 未幾, 太祖以水軍將軍, 出鎭羅州, 泊舟木浦, 望見川上, 有五色雲氣. 至則后浣布, 太祖召幸之, 以側微, 不欲有娠, 宣于寢席, 后卽吸之, 遂有娠生子, 是爲惠宗. 面有席紋, 世謂之襵主. 常以水灌寢席, 又以大甁貯水, 洗臂不厭, 眞龍子也. 年七歲, 太祖知有繼統之德, 恐母微不得嗣位, 以故笥盛柘黃袍, 賜后. 后示大匡朴述熙, 述熙揣知其意, 請立爲正胤. 后薨, 謚莊和王后.

 

 

 

[원문이미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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